자장이냐 짬뽕이냐. 사느냐 죽느냐를 외쳤던 햄릿 이후 최대의 고민이라고나 할까. 중국요릿집에서 당신도 메뉴판을 펼쳐 놓고 그 갈등의 순간을 겪었으리라.

어떤 현자께서 '양념 반 프라이드 반'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짬짜면이라는 희대의 발명품을 내놓았지만, 그 양자택일의 어려움이 해소된 것 같지는 않다.

그런데 한국인이 좋아하는 이 두 가지 국수는 아이러니하게도 중국 본토와는 별 상관없다. 자장면의 경우 캐러멜소스와 전분을 만나면서 '원형'으로부터 멀어졌다는 것이 정설이다. 짬뽕은 독특하게도 동양 삼국, 즉 한·중·일이 모두 얽혀 있는 별난 역사를 가지고 있다. 일본 나가사키에서 중국인 요리사에 의해 탄생한 후, 한국에서 매운맛의 독자적인 짬뽕으로 변화했다. 가히 '짬뽕의 삼국지'라고 부를 만한 역사다. 어떤 경우든 이 두 가지 국수는 한국식 중국 요리의 대표로 자리 잡았다. 누구도 본토와 다르다고 시비를 걸지 않는다.

그런데 이탈리아 요리를 두고는 다른 말이 나온다. 일례로 우리가 좋아하는 카르보나라 스파게티가 본토와 다르다는 지적이 있다. 달걀노른자와 절인 돼지 볼살을 넣는 이탈리아식 카르보나라가 진짜라는 얘기도 한다. 생크림을 넉넉하게 넣고, 베이컨 양념으로 만드는 한국식 카르보나라는 족보 없는 변종 취급한다.

이건 좀 지나치다. 오리지널이 아닌 걸 오리지널이라고 속이는 게 문제일 뿐이다. 모든 문화는 시공(時空)이 바뀌면 옷을 갈아입는다. 그게 자연스럽다. 이탈리아 요리조차 무수한 이방의 재료와 요리법의 세례를 통해서 오늘에 이르렀다. 현대 이탈리아 요리의 주인공인 후추와 고추, 토마토가 이탈리아 반도 출신이 아니라는 건 명백한 사실이다.

한국에는 참 많은 이탈리아 식당이 있다. 그래서 한국인은 이탈리아식을 사랑한다고 믿기 쉽다. 그러나 이건 좀 진실과 다른 듯하다. 좁은 내 소견으로는, 이탈리아식 중에서도 국수 문화를 사랑할 뿐이라고 생각한다. 만약에 스파게티가 없었다면 우리가 그토록 이탈리아식을 사랑할 수 있었을까.

스파게티는 수많은 파스타 중의 하나일 뿐이며, 파스타 역시 이탈리아식의 한 단계에 불과하니 말이다. 요리 스타일이 비슷하지만, 파스타가 없는 프랑스나 스페인 요리가 한국에서 번성하지 않는 걸 보면 이런 추측이 신빙성이 있는 것 같다.

때로는 귤이 회수를 건너 탱자가 될 수 있다. 그러나 모든 문화가 그런 것은 아니다. 이탈리아 정부에서 언젠가 전 세계 이탈리아 식당에 인증제를 도입하겠다고 선언했다. 인증의 기준은 요리법과 이탈리아 재료를 제대로 쓰고 있는지가 고려 대상이라고 한다.

원형을 지키는 일은 참 좋은 것이다. 그러나 용광로처럼 끓으면서 뒤섞이는 것도 문화의 새로운 면모라고 믿는다. 한국에 있는 다수의 요리사는 배나 비행기를 타고 건너온 이탈리아 재료보다는 한국에 있는 재료로 만드는 이탈리아 요리가 더 값지다고 지지한다. 만약 당신이 즐기는 자장면과 짬뽕 그릇에 누군가 '짝퉁'의 딱지를 붙이면 결코 기분이 좋을 것 같지는 않다.

한식 세계화의 여러 방안 중에 정부가 주도하는 외국 한식당에 대한 인증제가 거론되는 모양이다. 자장면과 짬뽕, 그리고 한국식 카르보나라를 사랑하신다면, 한번 재고해볼 사항이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