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인은 결국 생활이다. 우리 생활 속에 너무 깊숙이 들어와 미처 '디자인'으로 인식되지 못한 '생활 속 디자인'을 연재한다. 디자인 선정은 한국디자인문화재단과 함께 했다.
设计源于生活。也正因为如此,设计已根深蒂固于我们的生活,有时甚至都觉察不到身边的“设计”。笔者同韩国设计文化财团一起共同罗列了我们“生活当中的设计”。
 
얼마 전 호주 시드니에 출장 갔을 때의 일이다. 햇빛에 반사돼 반짝거리는 은빛 물체를 실은 오토바이에 행인들 시선이 집중됐다. 신기한 듯 쳐다보던 사람들 사이에서 한국인들이 "어!" 하고 탄성을 질렀다. 그 물건은 다름아닌 중국집 배달통 '철가방'. 현지 한국 음식점에서 내놓은 아이디어였다.
这是前不久笔者到澳大利亚出差时的事情。路人的视线全部集中到了载在摩托车后座的、在阳光的照耀下闪闪发亮的银色物体上。众人纷纷投来了好奇的目光,夹杂在人群中的韩国人突然很惊讶地大叫起来。那个东西不是别的,就是在韩国,中餐馆送餐用的金属铁箱。这是当地一家韩餐馆的创意。

중국집 철가방은 한국 화교의 독창적인 창작물로 한국에서만 볼 수 있는 물건이다. 전 세계에 화교가 포진해 있지만 철가방을 쓰는 곳은 없다고 한다.
中餐馆用于送餐的这个金属箱是在韩华侨的独创性产品,只能在韩国看得到。虽然全世界各地都能看到华人华侨的身影,但却没有一个地方使用这样的金属箱。设计评论家崔京元(音)评价说:“金属箱是兼具高明的创意和很强的功能性的独特设计品。”下面就让我们一起来看一看金属箱有什么别具一格的设计特点吧。

디자인평론가 최경원씨는 "철가방은 빼어난 독창성과 기능미를 지닌 디자인 제품"이라고 평가한다. 최씨가 말하는 철가방 디자인의 우수함은 이렇다. 밝은 금속판으로 돼 있어 청결한 인상을 준다. 안쪽을 낮은 책꽂이처럼 나눠 음식이 쏟아지는 것을 방지한 구조도 실용적이다. 아래위로 여닫는 '슬라이딩식 뚜껑'은 그릇을 쉽게 빼낼 수 있게 한다. 함석판이 약해 쉽게 휘어질 수 있다는 단점은 '원상 복구가 쉽다'는 장점으로 치환된다.因材质是明亮的金属板,所以给人很清洁的印象。箱子内部结构也极具实用性,为了防止食物外洒特别做成了如同低矮的书架似的隔板。另外,分成上下层的抽出式箱盖,便于取出器皿。镀锌铁板虽有容易变形的缺点,但也有“容易恢复原状”的优点。

철가방은 언제 만들어졌을까. 화교들의 기억을 종합해보면 대략 1960년대 후반. 서울 대학로 중국음식점 '진아춘' 주인 형원호(54)씨는 "1968년쯤 왕십리 철물점에서 양은 철가방을 만들다 70년대 중반 알루미늄으로 바꿨다"고 기억을 더듬는다. 누가 만들었는지는 확실치 않다.
那么,送餐金属箱是什么时候面世的呢?综合一下在韩华侨的记忆,大概是在上世纪60年代末期。在首尔大学路经营中餐馆“真亚春”(音)的邢沅豪(音)回忆说:“大约在1968年左右,位于往十里洞的五金店使用白铜制作了金属箱,到了70年代中期改换成铝板。”至于出自谁家手,尚不明确。

시작은 '나무가방'이었다. 50여 년 전 화교들은 한국식당과 경쟁을 위해 음식 배달을 시작했다. 보온 효과가 좋은 나무통에 배달했지만 무거운 게 흠이었다. 음식 얼룩도 잘 지워지지 않았다. 이 단점을 극복한 것이 양철 배달통이다.
其实,最开始使用的是“木制包”。大约在50多年前,在韩华侨们为了同韩餐馆竞争,开始了送餐服务。木制箱虽然保温效果出色,但是很重。况且,食物的油渍还很难清洗掉。而克服这一缺点的产品就是铁皮送餐箱。

45년 전통의 북창동 '신승관' 장경문(55) 전 대표는 "한 손으로도 들 수 있는 철가방은 깃털처럼 가벼웠다. 그 시절 '티허(提盒·화교들이 철가방을 부르던 말)'는 정말 보물단지였다"고 말한다.
有着45年历史、位于首尔北仓洞的传统中餐馆“新升馆”负责人张庆文(音)说:“铁皮箱可用一只手便轻而易举地拎起来,犹如‘羽毛’般轻巧。当时那个年代,提盒(华侨对金属箱的称呼)可真是个宝贝。”

이젠 플라스틱 배달통, 컬러 배달통까지 나왔다. 온라인 쇼핑몰에서도 살 수 있다. 그러나 '원조 철가방'의 인기는 사그라지지 않는다. 멜라민 파동 덕에 알루미늄 배달통으로 회귀하는 집들이 늘고 있단다. 
如今,市面上还有塑料送餐箱、彩色送餐箱等种类很多。可以在网上商城方便购物。然而,人们对“鼻祖金属箱”的喜爱程度却丝毫未减。据说,近来发生三聚氰胺事件以后,很多餐馆开始重新用起了铝制的金属送餐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