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韩国语教程》是从韩国延世大学引进的韩国语原版教材,是在韩国语学堂执教多年的老教授指导下集体编写出来的,是一套韩国语教学方面权威性很强又颇富实用性的教科书。

교육

4. 어느 장학금
교 수 : 자네,장학금을 타게 되었네. 일전에 독지가 한 분이 우리 과에 장학기금을 내놓으신 것 알지? 그 첫번째 장학금을 자네에게 주기로 어제 교수 회의에서 결정을 보았어.
김 군 : 그렇습니까? 고맙습니다. 전 등록금 준비가 안 되어서 근로 장학생으로라도 뽑아 주십사 하고 부탁드리려던 참이었어요.
교 수 :근로 장학생? 자네가 하고 있는 연구가 한창 진행 중인 이때에 근로 장학생이라니 그건 말도 안되는 소리야. 하여튼 등록금 전액을 받게 될 거야.
김 군 : 그런데 그 장학금을 내놓으신 분이 시장에서 노점상을 하시는 분이라던데 그게 사실입니까?
교 수 : 노점상이 아니고,시장 모통이에서 구두 수선을 하는 분이라네. 신용 본위로 틀림없이 곰꼼하게 해주니까 한번 갔던 사람은 꼭 그 집을 다시 찾는대. 나도 만나 보았는데 정말
사람이 순박하디 순박하더군.
김 군 : 그렇게 어렵게 번 돈을 어떻게 장학금으로 선뜻 내놓으셨을까요?
교 수 :그분은 결손 가정에서 자라서 정상적인 학교 교육을 못 받은 것이 한이었나 봐. 진학을 해서 못 이룬 꿈을 이루어 보려고 했지만,이미 때는 늦었고 해서 이왕이면 번 돈을 뜻있는 일에 쓰기로 하셨다고 하데.
김 군 : 참으로 저희들이 본받아야 할 분이시군요. 주신 분의 뜻에 어굿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5. 교육의 어제와 오늘

조 선시대의 단원 김홍도는 서당 풍경이란 그림에서 참 재미있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훈장을 중심으로 해서 머리를 길게 땋은 총각이 쭉 둘러 앉아서 웃고 있고,한 아이가 그 훈장 앞에서 울고 있다. 아마도 과제를 안 해왔거나 수업 중에 장난을 했거나 해서 매라도 맞은 모양이다.조선시대의 양반 자제들이나 평민 중 비교적 여유있는 집 아이들은 서당에서 교육을 받았다. 서당은 고려시대에 시작되어 조선시대까지 오랫동안 계속된 교육기관이었다. 읽고,외우고,쓰고 하는 간단한 형식의 교육이었지만,내용은 유교를 중심으로 한 것으로 윤리교육에 바탕을 둔 전인 교육이었다. 시를 짓고,철학을 배우고,예절을 익히고 하는 그야말로 사람을 사람답게 키우려는 인간 교육이었다. 옛날의 교육제도가 단계적으로 되어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중등교육기관으로 서울에는 사학(四學〉,지방에는 향교(�校〉가 있었으며,고등교육기관으로는 성균관이 있었다. 양반들의 최고 교육기관인 성균관에서는 유교 중심의 지식을 익히고,덕을 쌓아 훌륭한 인격을 갖춘 인간이 되는 것,그럼으로써 나라와 임금에게 충성하는 관리가 되는 것,부모에게 효도하는 사람이 되는 것을 교육의 목적이요 이념으로 삼았다. 성균관에서 이러한 교육을 받은 사람들은 관리가 되어 나라에 봉사하였다.양반 중심의 교육에서 벗어나서 서양식 교육이 시작된 것은 지금으로부터 약 100여년 전의 일이다. 서양 문물에 대한 관심과 더불어 신문화의 수입은 자연히 근대 교육에 눈을 뜨게 하였고, 조선 정부는 양반 자제들에게 새 학문을 교육하기에 이르렀다. 그 후 선교를 목적으로 들어온 선교사들은 '그리스도를 통하여 신학문을 가르치겠다’는 생각으로,또 국내의 뜻있는 사람들은 ‘아는 것이 힘이니 배워야 한다’는 생각으로 학교를 세웠다. 이 시대의 학교 교육은 시대적 배경과 정치적 상황 때문에 다른 때와는 달리, 새 지식을 가르치고,사람들을 계몽시켜서 새 시대에 맞는 지식인으로 만들고,기울어져가는 나라를 일으키는 데 목적이 있었다. 현재의 학교 교육은 그간의 많은 시행착오를 거쳐서 어느 정도 정착되었다고 할 수 있게끔 되었다. 국민학교 교육이 형식적인 틀에서 벗어나서 열린 교육으로 향하고 있고,중학교 교육도 의무교육으로 자리잡으면서 한편으로는 전인 교육에 힘을 기울이고 있다. 고등학교 교육이 아직도 입시 위주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하나,21 세기 초반에 들어서면 점차 해결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