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1년, 청나라를 무너뜨리고 중화민국을 세운 혁명.

[혁명의 발단] 청나라 타도를 외치는 혁명 운동이 날로 격화하자, 청나라 정부는 헌법을 제정하고 국회를 열겠다는 등의 약속으로 사태를 수습하려 하였다. 그러나 한번 타오르기 시작한 혁명의 불길은 막을 수 없어 결국 신해혁명이 일어났다(1911년). 혁명의 발단이 된 것은 철도 국유화 문제였다. 재정난에 빠진 청나라 정부가 민영 철도를 국유화하여 이를 담보로 외국 차관을 얻으려 한 데 대해 쓰촨 등지에서 이에 반대하는 폭동이 일어났고 전국이 어수선한 가운데 우창에 주둔해 있던 군대 중의 혁명파가 반기를 들고 일어섰던 것이다.

[중화민국의 수립] 이 혁명 운동은 순식간에 전국으로 번져 15개의 성이 독립을 선언하고 폭동 진압에 나섰던 장군들도 청나라를 배반하였다. 이리하여 혁명 세력은 난징에 중화민국을 세우고 쑨원을 임시 대총통으로 추대하였다.

[군주 제도의 몰락] 당황한 청나라 정부는 위안스카이를 보내 혁명 세력을 진압하려고 하였다. 그러나 위안스카이는 청나라 황제(선통제) 퇴위를 조건으로 쑨원의 양보를 얻어 자신이 중화민국의 대총통 자리에 올랐다(1913년). 이리하여 청나라는 멸망하고 2,000년에 걸친 군주 제도가 끝이 났다.

[군벌 정치의 등장] 군주제를 무너뜨린 신해혁명도 전제 정치를 완전히 뿌리 뽑지는 못하였다. 대총통이 된 위안스카이가 헌법과 의회를 무시하고 군벌(군부 세력)을 배경으로 독재를 했기 때문이다. 쑨원 등은 제2혁명을 일으켜 위안스카이를 타도하려 했으나 실패하여 그 후 얼마 동안 군벌 정치가 계속되었다.

[베이징의 군벌 정권] '군벌'이란 지방에 할거한 군사적 지배 세력을 말하는데, 청나라 말기부터 이 같은 군벌이 각지에 형성되었다. 그중에서도 북양 군벌인 위안스카이의 세력이 가장 커서 신해혁명 후 쑨원으로부터 대총통 자리를 빼앗고 베이징 정권을 수립하였다. 위안스카이가 죽은 뒤에도 유력한 군벌들이 잇따라 정권을 잡고 쑨원 등의 혁명 세력과 대립하였다.

[선통제] 청나라의 마지막 황제이다. 신해혁명 이후 중화민국이 수립되자, 위안스카이에 의해 퇴위당하였다. 후에 일본의 계략에 의해 만주국 황제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