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충헌의 집권/도방과 교정도감/최우의 집권/삼별초의 창설/최씨 정권의 쇠퇴/최씨 정권의 특징

[최충헌의 집권]

최충헌은 무신정변 이후 이의민을 제거하고 정권을 잡았다. 그는 지위 향상을 요구하는 백성들의 저항 운동과 문신들과 결탁한 사원 세력을 무력으로 누르고 무신 독재 정치의 터전을 마련하였다. 처음에는 왕에게 '봉사 10조'를 올려 귀족들의 대토지 소유를 막고, 왕실의 고리대업과 재산의 도피를 금하며, 조세 제도를 고쳐야 한다는 등 개혁 방안을 제시하였다. 그러나 세력을 잡고 나자 스스로 토지와 노비를 늘려 넓은 농장을 차지하는 한편, 농장을 기반으로 사병을 길러 세력을 튼튼히 하였다.

[도방과 교정도감] 

1. 도방
사병은 최씨 무신 정권을 뒷받침하는 바탕이 되었는데, 그 모범이 된 것은 경대승이 설치한 도방이었다. 최충헌은 도방을 설치해 자기 신변을 경호하게 하고, 이를 기반으로 세력을 굳혔다. 

2. 교정도감
(1) 도방이 최씨 정권의 군사적 배경이었다면, 최씨 정권의 정치적 배경이 된 것은 교정도감이다. 최충헌이 설치한 교정도감은 인사 관계, 세금 징수, 관리의 비행 등을 감찰하는 무신 독재 정치 기구였다.
(2) 최충헌은 스스로 교정도감의 으뜸 벼슬인 교정별감이 되어 정치적인 반대자를 감시하고 찾아내 숙청하였다. 교정별감은 최씨 일가가 대대로 세습하였다.

[최우의 집권]

1. 정방 설치
최충헌의 아들 최우는 자기 집에 정방을 두어 문무관의 인사 처리와 정무를 보게 하면서 마음대로 정치를 하였다.

2. 문신의 등용
이전의 무신 집권자들과는 달리 문신을 우대해 등용하였다. 또한, 서방을 설치해 문인들로 하여금 나랏일을 의논하게 하였다. 이는 최우가 무인만의 대표가 아니라 문무를 통한 실권자임을 보여 준다.

[삼별초의 창설]

도방과 함께 최씨 정권의 군사적 배경을 이루었던 삼별초는 최우가 집권할 때 조직되었다.

1. 삼별초의 구성
삼별초는 본래 도적을 막기 위해 설치한 야별초에서 비롯된 조직으로, 군인의 수가 늘어남에 따라 좌별초와 우별초로 나뉘었다. 그 뒤 몽고와의 항쟁 때 몽고군에 포로가 되었다가 도망해 온 사람들로 신의군을 조직 하면서 이를 합쳐 삼별초로 불렀다. 

2. 최씨 집안의 사병화
삼별초는 본래 공적인 임무를 띤 기관이었으나, 최씨가 다시 조직하면서 최씨 집안의 사병처럼 되었다.

[최씨 정권의 쇠퇴]

최우 이후에도 최씨 무신 정권은 최충헌의 손자 최항과 증손자 최의가 차례로 정권을 잡으며 완전한 독재 체제를 이루었다. 그러나 막강한 권력을 누리던 최씨 무신 정권도 최의가 김준에게 살해되면서 막을 내렸다.

[최씨 정권의 특징]

최씨 정권은 전기의 귀족들과 달리 왕과 외척 관계를 맺지 않았고, 형식상으로는 언제나 왕을 앞에 내세웠다. 국민에 대한 회유책으로 향·소·부곡민을 해방시켜 현으로 승격시키기도 했고, 철저한 항몽 정책으로 자주성을 강조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