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학률의 차이/고등 교육 기회의 차단/교과서의 차이/위협적인 수단 동원

일제는 한반도를 강점한 이후 일본인에 대한 교육과 한국인에 대한 교육에 차별을 두었다. 일제의 교육 방침은 오직 그들의 식민 정책에 따르는 한국인을 길러 내는 데 있었다.

[취학률의 차이]

1. 일본인에 대한 지원
일본은 한국에 나와 있는 일본 거류민 아동의 교육을 위해 지방마다 학교 조합을 만들어 학교를 세우고 해마다 막대한 보조금을 주어 교육을 장려하였다.

2. 한국인의 저조한 취학률
한국인에 대해서는 신교육에 적극성을 보이지 않았다. 1925년의 경우, 한국인의 초등 학교 취학률은 일본인의 1/6에 지나지 않았다.  

[고등 교육 기회의 차단]

1. 고등 교육 차단의 이유
일제는 의도적으로 한국인에 대한 고등 교육을 막았다. 유능한 한국인과 민족 지도자가 양성되면 식민 통치에 지장이 있을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2. 기술 교육 치중
일제는 3·1 운동 이후 한국인의 교육 정도를 일본인과 같게 한다는 구호를 내걸었으나, 고등 교육 기관에서 교육받는 한국인의 수는 일본인에 비해 매우 적었다. 이는 결국 일제가 식민지화를 위해 실업 교육과 기술 교육에만 치중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교과서의 차이]

1. 교과서 편찬의 목표
일제는 교과서도 식민지 정책에 협력하는 노예적 인간을 키워 내는 데 목표를 두고 편찬하였다. 수준도 일본 내의 교과서와 차이를 두어 한민족의 우수성을 말살하고자 하였다.

2. 교과서의 주요 내용
교과서의 내용도 학문과 현실을 무시하였는데, 특히 국어와 역사, 수신 과목에서 더욱 심하였다. 수신 교과서의 경우 충효 관념을 심는 데 치중해 일본 천왕에 대한 충성심을 기르도록 편찬하였다.

[위협적인 수단 동원] 

일제는 우민화 교육을 달성하기 위해 교원에게도 군국주의의 상징인 제복과 제모를 착용하게 하였다. 또한, 칼까지 차고 학생들을 가르치도록 하는 등 교육에까지 위협적인 수단을 동원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