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영화/미술/음악

일제 강점기 우리 예술은 민족의 사상과 감정을 살려 민족 문화의 전통을 잇고, 민족의식을 일깨우는 데 중점을 두었다.

[연극]

1. 특징
영화와 더불어 연극은 예술 활동 중에서 대중과 가장 가까운 위치에 있었다. 비록 민족 문학 운동에 비해 폭넓게 전개되지는 못했지만, 일제에 저항하는 정신 자세나 질적 내용에서는 결코 뒤지지 않았다. 

2. 신극 운동과 토월회
임성구, 윤백남 등이 신극 운동을 시작한 뒤, 1922년에는 박승희, 김기진 등이 토월회를 조직해 민족의 고유한 멋과 맛이 묻어나는 민족적인 내용의 작품들을 많이 공연하였다. 토월회는 자주 전국을 순회하면서 민족을 계몽하는 데도 힘썼다.

[영화]

영화에서는 나운규와 안종화 등이 개척자 구실을 하였다.

1. 나운규의 아리랑
나운규는 <아리랑>, <풍운아> 등을 통해 민족의 저항 의식과 한국적 정서를 부각시켜 많은 관객을 감동시켰다. 특히 그가 직접 시나리오를 쓰고 주연과 감독까지 맡았던 <아리랑>은 당시 우리 민족의 저항 정신을 상징적으로 암시한 뛰어난 작품이다.

2. 안종화의 역습
안종화는 <역습>에서 독립에 대한 무한한 욕구를 표현하였다.

[미술]

1. 총독부의 조선 미술 전람회 참여 거부 운동 
(1) 미술 분야에서는 조선 총독부가 주관하는 조선 미술 전람회의 참여를 거부하고 독자적인 미술 전람회를 개최해 민족 미술을 정립시켜 나갔다.
(2) 선전(조선 미술 전람회) 거부 운동의 모체는 1918년 고희동 등이 조직한 서화 협회였다. 서화 협회는 민족 미술 차원에서 동양화가와 서양화가가 공동으로 참여해 조직한 민족 미술 단체이다. 우리 미술인들은 조선 미술 전람회의 출품 거부 투쟁을 벌이는 한편, 따로 서화 협회 전람회를 개최하였다.

2. 작품 경향
일제하의 우리 미술인들은 소, 차륜, 초가, 농촌 등 우리의 향토적인 소재를 통해 잃어버린 민족의식을 되찾으려고 노력하였다. 이중섭과 같은 화가가 소에 관한 그림을 즐겨 그린 것도 바로 그와 같은 목적에서였다.

[음악]

1. 전통 음악과 서양 음악
음악 분야에서는 전통적인 판소리와 서양 음악 두 분야에서 민족 운동이 추진되었다. 이 두 분야는 서로 다른 형태를 띠고 있었음에도 민족적인 선율이나 감정 면에서는 동일하였다.

2. 서양 음악 작품
서양 음악 작품 가운데는 홍난파의 <봉선화>가 유명하다. 이 작품은 민족의 슬픔과 분노와 의지를 담은 민족 음악으로 오늘날까지 불리고 있다. 그 밖에 안익태는 <애국가>를 작곡했고, 윤극영은 동요 <반달>같은 민족적 감정이 어린 작품을 많이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