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기습 남침과 서울 함락/미국과 유엔의 대응/낙동강 전선의 치열한 전투

[북한의 기습 남침과 서울 함락]

1. 북한의 남침
소련의 무기 공급과 지원으로 전쟁 준비를 해 온 북한은 1950년 6월 25일 새벽에 남침을 감행하였다. 북한군은 침공 직후 개성, 동두천, 춘천, 강릉 등 11개 지역에서 일시에 38˚선을 돌파하였다.

2. 국군의 후퇴
치안을 유지하고 공산 게릴라를 소탕하는 정도의 군사력밖에 없던 우리 국군은 공산군의 우세한 화력과 장비를 당해 낼 수가 없었다. 정부는 대전, 대구를 거쳐 부산으로 피란하여 그곳을 임시 수도로 삼았다.

[미국과 유엔의 대응]

북한이 남침하자 정부는 곧 미국에 원조를 요청하고, 유엔 한국 위원단도 북한의 남침을 확인한 뒤 이를 유엔에 보고하였다. 미국의 요청으로 열린 유엔 안전 보장 이사회는 적대 행위의 즉각 중지와 북한군의 38˚선 이북으로의 즉시 철수를 결의하였다. 그러나 북한이 이를 거부하고 남침을 계속하자 유엔 안전 보장 이사회는 모든 회원국에 한국을 돕도록 권고하는 또 다른 결의안을 통과시켰다. 

[낙동강 전선의 치열한 전투] 

국군과 유엔군은 마산과 왜관, 영덕 등을 잇는 낙동강 방위선을 구축하고 반격을 개시하였다. 마침내 낙동강을 건널 기회를 노리던 북한군을 격퇴하고, 계속해서 마산·포항·영천·영덕 지구에서 치열한 전투를 벌여 포항과 영천을 확보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