看电视剧,作为王,作为一国之首似乎是非常风光的事情,可以后宫佳丽万千,可以决他人生杀大权于一身,可以无所不为。那么,历史上的王也是如此吗?下面我们一起来看下曾在韩国几部电影中出现过的王,看看真实历史中的他们是怎样的吧。

섬뜩하고도 잔혹한 공민왕의 최후 × <쌍화점>
可怕又残酷的恭愍王的最后 X 《霜花店》

유하 감독의 영화 <쌍화점>(2008년 개봉)은 고려 말 원의 간섭기, 고려 왕실을 배경으로 한 격정 애정극이다. 고려가요 <쌍화점>을 영화 제목으로 한 것은 고려가 배경인 남녀상열지사(男女相悅之詞: 남녀가 어울려 서로 즐기는 노래) 영화라는 것을 말하기 위해서일 테다. 영화의 중심 이야기는 왕과 왕비 그리고 호위 무사 사이에서 벌어진 묘한 삼각 애정 관계인데, 이 영화의 모티브가 된 것은 고려 31대 왕 공민왕(恭愍王, 재위 1351~1374)의 실제 시해 사건이다.
柳河导演的电影《霜花店》(2008年上映)是以高丽末期,在元朝的干涉下,高丽王室为背景的激情爱情剧。将高丽歌谣《霜花店》作为电影题目是因为高丽时期的男女相悦之词就是在说这部电影。电影的中心故事是王和王妃还有护卫武士之间展开的微妙的三角爱情关系,这部电影的原型是高丽31代王—恭愍王的实际杀人事件。

영화 <쌍화점>에서 왕이 사랑하고 왕비와도 사랑하게 되어 삼각관계의 중심에 있던 호위 무사 홍림(조인성 분)은 공민왕 대에 실존한 홍륜(洪倫, ?~1374)에 기초해 만든 인물로 보인다.실제 『고려사』에 남아 있는 공민왕의 최후는 섬뜩할 만큼 현실적이고 잔혹하다. 영화에서처럼 실제 공민왕도 홍륜과 익비(보탑실리가 죽은 후 들인 후비) 사이에서 생긴 아이를 자신의 후계자로 삼으려고 했다. 그리고 두 사람의 은밀한 관계를 아는 사람들을 모두 죽이려고 했다. 그러자 이를 알게 된 내시 최만생(崔萬生, ?~1374)이 아이의 아버지인 홍륜과 자제위의 청년들에게 이를 알렸다. 목숨이 위태로웠던 그들은 이때까지 모셨던 왕을 배반하고 즉각적으로 시역(弑逆: 신하가 임금을 죽이는 일)에 참가하였다. 왕이 술에 취해 잠든 틈에 침전에 들어간 홍륜과 동료들은 뇌수가 벽에 튀어 붙을 때까지 왕을 칼로 내리쳐 죽였다.
电影《霜花店》中,被王爱着,也和王妃相爱的三角关系的中心人物—护卫武士洪麟(赵寅成)是基于真实存在于恭愍王时期的洪伦所描绘的人物。实际上,留存在《高丽史》中的恭愍王的结局现实和残酷得可怕。就像电影中那样,实际上,恭愍王也想要将洪伦和懿妃(宝塔失里死去后的谥号)所生的孩子当作自己的继承人。并且还想要杀了所有知道这两人的隐秘关系的人。知道这件事的内侍崔万生将这件事告诉了孩子父亲洪伦和子弟卫的青年们。性命岌岌可危的他们背叛了至今为止一直跟随的王,马上参加了弑逆。他们在王喝醉酒入睡的时候进入寝殿,洪伦和同僚们用刀砍死了王,砍到了他的脑浆都溅到了墙壁上。

아버지 선조의 구박과 질시를 극복하고 왕이 된 자 × <광해, 왕이 된 남자>
克服了父亲宣祖的虐待和嫉妒,成为王的人 X 《光海,成为王的男人》

2012년에 개봉한 <광해, 왕이 된 남자>(감독 추창민)는 그동안 한국 역사 영화에서 잘 다루지 않던 광해군 대를 시대 배경으로 해 조선 중기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을 이끌어 낸 영화다. 영화는 이런 광해군 시기의 긴장감 넘치는 정치 상황에서 왕의 유고(有故)로 얼떨결에 잠깐 왕 노릇을 하게 된 시정의 만담꾼 하선(이병헌 분)을 통해 왕위의 지엄함과 고뇌를 보여 준다.
2012年上映的《光海,成为王的男人》(导演秋昌民)是以过去韩国历史电影中很少讲述的光海君时期为时代背景的电影。电影在光海君时期满是紧张感的政治情况下,王因为一些原因稀里糊涂下将王的位子让市井的相声艺人河善(李秉宪)担任,展现王位的严谨和王的苦恼。

광해군은 왕이 되기 전부터 심리적으로, 물리적으로 많은 고초를 겪은 사람이다. 이렇게 된 데는 그의 아버지 선조의 영향이 크다. 이 글에서는 광해군이 왕이 되기까지를 중심으로 살펴보자.
光海君是个在成为王之前心理上和外在上经历了许多苦楚的人。之所以会这样大多是受了他父亲宣祖的影响。在这里主要讲光海君为王之前的事情。

선조는 자신의 왕권에 열등감이 많았다. 명종 대까지는 태조 이성계의 혈통을 정통으로 잇는 사람들이 왕이 되었는데, 명종이 후사 없이 죽자 명종의 비인 인순왕후의 남동생 심의겸의 후원 덕에 중종의 후궁 소생 손자인 선조가 왕으로 발탁되었다. 신하 덕에 왕좌를 얻은 선조는 언제나 자신의 뒤를 이를 세자는 제대로 된 적장자이기를 바랐다. 그런데 선조는 자신의 바람과 달리, 적장자를 낳아 줄 왕비인 의인왕후와 금슬이 그다지 좋지 못했고, 세자 자리를 비워 두어 후궁 소생 왕자들을 허무한 정쟁에 휩쓸리게 했다.
宣祖对自己的王权很自卑。至明宗时,正统地继承了太祖李成桂血统的人被成了王,而随着明宗没有后嗣就死去,因为明宗妃子仁顺王后的弟弟沈义谦的支持,中宗后宫所生的孙子—宣祖被选为王。因为臣子的助力获得王位的宣祖一直都对继自己之后的世子能成为令人满意的继任者。但是,不同于自己的期待,宣祖和生下继承者的王妃懿仁王后关系并不好,他空置世子之位,让后宫所生的王子们陷入了徒劳的政治斗争之中。

광해군은 선조의 후궁 소생 아들 중 공빈 김씨가 낳은 둘째 아들로 왕의 재목으로 가장 싹수가 있고 총명했다. 그러나 선조는 선뜻 결정을 내리지 못한 채 광해군은 불안에 떨게 했다. 그러던 중 임진왜란이 터졌다. 파죽지세로 올라오는 왜군을 피해 궁을 떠나면서 선조는 후사를 걱정하는 신하들의 청에 떠밀려 광해군을 마지못해 세자로 정했다. 피난 이후 선조와 광해군이 보여 준 태도는 판이했다. 선조가 계속 북진하면서 명의 처분만을 바라고 여차하면 나라를 버린 채 중국으로 망명할 계획까지 세우는 동안, 열여덟 살의 세자 광해군은 전쟁터를 직접 찾아다니며 의병과 관군을 위로하고 격려했다. 민심은 수도를 버리고 떠난 선조 대신 광해군을 향하고 있었다.
光海君在宣祖后宫所生的儿子中,是恭嫔金氏所生的次子,是最有王者之才,也最聪明的。然而,因为宣祖没办法痛快地做出决定,所以光海君很不安。就在那时爆发了乱。为了避开以破竹之势冲上岸的倭寇而离宫时,宣祖被为担心后嗣的臣子所请,不情愿地立了光海君为世子。避难后,宣祖对光海君的态度变得截然不同。在宣祖继续向北,只求活命,还计划一有事的话就抛弃国家,亡命到中国去时,年仅18岁的世子光海君直接前往战场,慰问和鼓励义兵和正规军。民心从抛弃首都离开的宣祖上转移到了光海君身上。

이 무렵 임진왜란이 끝났다. 선조는 전쟁 동안 자신이 보인 비겁한 태도를 수습할 길이 없는 민망함과 급부상한 아들 광해군에 대한 질투에 그를 대놓고 구박하기 시작했다.나이 오십에 홀아비가 된 선조는 열여덟 살 처녀에게 새장가를 들었다. 선조는 젊은 왕비를 총애했고 그 덕에 오십 줄에 정비 소생 아들, 적자를 얻었다. 적장자가 아니란 이유로 아버지로부터 인정받지 못하고 심지어 질투까지 받은 아들 광해군은 그야말로 조용히 엎드려 세월이 가기만을 기다렸다. 그러나 하늘도 무심하지 않았는지 광해군을 내쫓고 영창대군을 세자로 올리기 전, 선조가 사망하고 광해군은 예정되어 있던 왕좌를 차지한다.
在这个时候,壬辰倭乱结束了。宣祖因为在战争时期自己所展现的卑劣态度而无法收场感到尴尬以及对威信快速上升的儿子光海君的季度,他开始明目张胆地虐待光海君。年纪50成了 鳏夫的宣祖娶了才18岁的少女。宣祖宠爱年轻的王妃,因此在50多岁的时候得了正妃所生的嫡子。以非嫡的理由不得父亲的承认,甚至还被嫉妒的光海君只得安静地蛰伏,等着时间过去。然而不知是不是上天也有眼,在宣祖赶走光海君,将永昌大君立为世子之前,宣祖死了,光海君坐上了预定的王位。

누가 정조를 죽이려 했나 × <역린>
是谁想要杀了正祖呢 X 《逆鳞》

정조는 흔히 조선의 중흥기를 이끈 왕으로 알려졌으며 세종과 더불어 성군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특히 1990년대 이후 한국 사학계에서 정조 시대를 다양하게 조명하는 연구가 많아졌는데, 이런 학문적 성과가 문화계로 넘어가 이 시대를 배경으로 한 소설과 영화, 드라마 등을 많이 만들어 냈다.조선 시대 왕실에는 잔혹한 스캔들이 꽤 많지만 뭐니 뭐니 해도 그중 가장 말초적인 흥미를 불러일으키는 것은 임오화변이다. 69세 아버지 영조가 28세 아들 사도세자를 음력 5월, 즉 양력으로 6월에서 7월로 넘어가는 한여름에 8일간 뒤주에 가두고 아무것도 먹지도 마시지도 못하게 해 죽음에 이르게 한 사건이 바로 임오화변(1762)이다. 이들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기에 이토록 망극한 사건이 벌어졌을까? 사건의 원인을 두고 여러 의견이 있는데, 그중 하나는 이 부자를 사이에 두고 일어난 붕당 간 갈등이 원인이라는 것이다.
正祖作为带领朝鲜中兴期的王而广为人知,和世宗一起被奉为圣君。特别是在1990年代以后,韩国史学界聚焦正祖时期的研究越来越多,这种学问成果影响了文化界,以这一时代为背景的小说和电影,电视剧等大举出现。朝鲜时代王室虽然有很多残酷的传闻,但不管怎么说,其中最让人感兴趣的就是壬午祸变。69岁的父亲英祖将28岁的儿子思悼世子在阴历5月,即阳历的6月到7月的大暑天里,整整8天关在了米柜里,不给吃不给喝直到死亡的事件就是壬午祸变。他们之间到底发生了什么事才会导致这样悲惨的事件发生呢?对于事件的原因虽然有很多不同的意见,但其中之一说是因为这对父子之间发生的朋党矛盾。

정조가 왕세손(왕위를 이을, 왕의 손자)이던 시절, 그의 아버지 사도세자를 죽인 노론 측은 정조가 왕위를 잇지 못하게 하려고 갖가지 위기 속에 정조를 몰아넣었다. 그러나 정치적 입지가 불리하다고 여긴 정조는 자중자애 근신을 거듭하며 노론의 위협과 할아버지 영조의 시험을 통과해 냈다.정유역변은 정조가 즉위한 다음 해인 1777년(정유년) 7월 28일 에 벌어진 정조 암살 미수 사건이다. 영화 <역린>에서는 암살범들이 대놓고 궁에 들어오는 상당한 규모의 액션 장면으로 과장되었는데, 실제 정유역변은 사건 당일에 조용히 처리되었다. 정조가 개인 서재인 경희궁 존현각에서 주위를 물리고 책을 읽고 있는데, 지붕에서 발소리가 들리고 기왓장이 깨지는 소리까지 났다. 놀란 정조가 급히 사람들을 불러 살펴보게 하니, 존현각 지붕의 기왓장이 밟혀 깨진 채 흩어져 있었다. 왕이 있는 곳에 몰래 침입하려는 자라면 자객이 분명했다. 위기를 느낀 정조는 곧 창덕궁으로 옮겨 갔는데, 7월 28일 존현각 지붕에 오른 자객이 8월 11일 창덕궁에 다시 침입하려다가 붙잡힌다.
正祖作为王世孙(将继承王位的王的孙子)的时候,因为杀死他的父亲思悼世子的老论派为了不让正祖继承王位而将正祖推入各种危机之中。然而,在政治立场上不利的正祖自重自爱,谨慎小心,成功躲过了老论的威胁和爷爷英祖的考验。丁酉叛乱是在正祖即位之后的第二年,即1777年7月28日发生的正祖暗杀未遂事件。电影《逆鳞》中,逆贼们明目张胆入宫的大规模武侠场面是被夸大了,实际上,丁酉叛乱在事件当日被安静地处理掉了。正祖在个人书房庆熙宫的尊贤阁挥退了左右读书,他听到房顶上传来脚步声,甚至还听到了瓦片裂开的声音。受惊的正祖马上叫人查看,尊贤阁的屋顶瓦片被踩裂四散。想要偷偷潜入王所在之处的人必定就是刺客。觉得危险的正祖马上搬到了昌德宫,7月28日上了尊贤阁屋顶的刺客在8月11日再次试图入侵昌德宫时被抓到了。

배후가 밝혀진다. 정조의 즉위를 방해하던 노론 강경파 홍술해(洪述海, 1722~1777)의 아들 홍상범(洪相範, ?~1777)이 주축이 되어 정조의 암살을 꾀한 것이다.
背后的指使者被揭晓。是以妨碍正祖即位的老论强硬派洪述海和他的儿子洪相範为主策划的暗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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