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의 침략 정책] 3국 방공 협정이 체결된 후 독일의 침략 정책은 한층 노골화되었다. 그 첫번째 목표가 독일인이 많이 거주하는 오스트리아로 1938년 이 지역을 …

[독일의 침략 정책] 3국 방공 협정이 체결된 후 독일의 침략 정책은 한층 노골화되었다. 그 첫번째 목표가 독일인이 많이 거주하는 오스트리아로 1938년 이 지역을 완전히 독일 영토로 삼아 버렸다. 그럼에도 영국과 프랑스는 독일과의 사이가 나빠지는 것을 꺼려 이를 눈감아 주었기 때문에 독일은 더욱 기세가 올라 계속 침략의 손길을 뻗쳤다. 오스트리아를 병합한 히틀러는 같은 해 다시 체코슬로바키아 서부의 독일인 거주 지역인 수데텐 지방을 차지하려고 함으로써 심각한 국제 분쟁이 야기되었다.

[뮌헨 회담의 성립과 결과] 1938년 영국 수상 체임벌린의 주선으로 국제 분쟁을 조절하기 위한 영국·프랑스·독일·이탈리아의 4개국 회담이 뮌헨에서 열렸다(뮌헨 회담). 이때 히틀러는 수데텐 지방이 '독일이 요구하는 마지막 영토'라고 강경한 태도로 나왔으므로 영국과 프랑스는 수데텐 지방을 독일에 양도하는 협정에 조인하였다. 이 같은 영국·프랑스의 '유화 정책'은 소련과 유럽 약소국들에게 실망을 주었고 그들로 하여금 독일과의 타협 쪽으로 기울게 했다.

[연합국들의 침략 저지 정책] 히틀러는 이러한 정세를 이용해 침략의 폭을 넓혀 나갔다. 그리하여 1939년에 다시 체코슬로바키아의 서쪽 반을 빼앗고, 나머지 영토도 보호국으로 삼았다. 독일의 침략이 갈수록 확대되자 영국과 프랑스도 이제까지의 유화 정책을 버리고 군비 강화를 서두르는 한편, 히틀러의 다음 목표인 폴란드 등과 상호 원조 조약을 체결하여 더 이상의 독일 침략을 저지하려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