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릴레이의 신과학 대화] 지동설을 주장한 책을 써 재판을 받고 나온 갈릴레이는 세상을 떠날 때까지 그의 집에 갇혀 지냈지만, 과학에 대한 그의 집념은 조금도 변함이…
[갈릴레이의 신과학 대화] 지동설을 주장한 책을 써 재판을 받고 나온 갈릴레이는 세상을 떠날 때까지 그의 집에 갇혀 지냈지만, 과학에 대한 그의 집념은 조금도 변함이 없었다. 그리하여 1636년에 그는 새 책 《신과학 대화》를 완성하였다. 1638년 네덜란드에서 비밀리에 출판된 이 책에서 갈릴레이는 낙체와 포물체의 운동 등 새로운 과학적 사실들을 쉽게 기술하였다. 그때 이미 갈릴레이는 시력을 잃었지만, 연구 활동은 계속 하였다. 그는 토리첼리(1608~1647년)와 같은 우수한 과학자를 가르치는 일로 여생을 보내다가 1642년 1월 8일 세상을 떠났다. 그가 죽은 후에도 교회는 그를 인정하지 않았다. 갈릴레이에게는 장례식을 치르는 것도, 가까운 친지들의 옆에 묻히는 것도 허락되지 않았다. 비록 이러한 수난을 겪으며 일생을 마쳤지만, 갈릴레이는 후대의 과학자들에게 많은 영향을 미쳤으며 과학사에 적지않은 업적을 남겨 오늘날까지 위대한 과학자의 한 사람으로 존경받고 있다.
[토리첼리의 진공] 토리첼리(1608~1647)는 이탈리아의 물리학자이며 수학자이다. 그는 로마에서 수학 교수 카르텔리의 지도를 받았고, 1641년부터는 갈릴레이를 도와 자유 낙하를 연구하며 지동설을 증명하는 데 힘썼다. 그는 수은에 대한 연구를 계속하여 1643년 '토리첼리의 진공'을 발견하였다. 토리첼리의 진공이란, 길이 1m 되는 유리관에 수은을 채워 이 유리관을 거꾸로 하여 수은을 담은 용기에 넣으면 수은 위 끝이 약 76cm까지 내려가 멈추는데, 이보다 위쪽의 유리관 속이 약간의 수은 증기를 제외하연 진공 상태라는 것이다. 이 실험은 공기의 압력이 76cm의 수은 기둥의 무게(약 1kg/㎠) 라는 것을 처음으로 보여 준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