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学,就是用语言塑造形象反映社会生活,又用极强烈的感染力影响社会生活。我们为具备一定阅读基础的童鞋准备的韩国文学名作大餐,希望大家提高阅读的同时,感受这些文学作品中的优美文字感情和艺术表现手法。

일락서산24 — 이문구
日落西山24 — 李文求

그런 점에서 보면 아버지는 무던히도 대범한 사람이었다. 할아버지처럼 가리고 찾는 게 없던 사람이었다.
从这一点来看,爸爸是一个非常大度的人,不像爷爷那样挑三捡四。

뿐더러 할아버지를 닮아 점차 입이 짧아져 가는 나의 편식도 나무라거나 걱정하지 않았다. 특히 삼강 오륜을 배우고 그 중에서도 내가 철저하게 실천해 보였던 장유 유서 사고 방식에 의한 생활면에서의 뒤처짐도 개의치 않았다기보다는 아예 무관심 일변도였다.
不仅如此,我越来越像爷爷那样挑食偏食,他也从不担心和责怪。特别是当我学了三纲五伦以后,我根据其中长幼有序的思想,在实际生活中彻底坚守这种落后的习惯,他也从不责怪我,或者说根本不予关心。

나는 사실 내가 생각해 봐도 답답할 정도로 장유 유서질서를 분명하게 지키려고 하였다. 지금도 나는 무슨 일에든 앞에 나서지를 못한다. 표면상으로 나타나는 것조차도 꺼려하는 버릇이 있다. 그것은 그 무렵 어린 몸에 배어 들었던 그 장유 유서적 질서 감각의 찌꺼기 탓일지도 모른다.
我一直坚守长幼有序的秩序,甚至达到令自已烦闷的程度。直到今天,我在任何事情上都无法站出来,甚至连表面上显露一下都不情愿,或许就是因为当时刻入我幼小心灵的长幼有序思想的遗毒。

요즘에야 깨우친 일이지만 질서 감각은 열 번 생각해 봐도 아무런 이득이 없는 거였다. 이득은커녕 의미마저 무가치하게만 여겨지고 있다. 그것을 세상 탓으로만 돌린다 하더라도 결과는 매한가지이다.
虽然最近才醒悟到,想过十遍也仍然觉得那种秩序感没有任何好处。不仅没有好处,而且毫无意义。就算那是世道的过错,招致的结果也一样。

매양 남보다 뒤처지게 마련인 데다 생색을 못 낸 채 그늘에 묻히기 십상이던 것이 그 질서가 아니었을까 한다. 응분의 대가를 받지 못하는 뒷바라지만 해야 한다면 얼마나 쓸쓸한 노릇이랴, 어차피 대로행(大路行)해야 할 군자가 못 된 바에는.
现在想来,遇事总是走在别人后面,甚至表达不了自己的意思,总是躲在阴影里做人,这就是所谓的秩序感。得不到应得的回报,只在背后默默奉献,该有多么凄凉啊。既然成不了大路行的君子,小时候怎么没学到爸爸的宽容大度啊?

지금 생각에도 이상한 것은 아버지의 대범함에도 아무런 영향을 못 받았던 소년 시절의 아둔함이다. 앞서 말했듯이 아버지의 사상은 할아버지의 그것과 대각을 이뤘다 할 만큼 가문에선 파격적인 것이었다.
现在想起来也难以理解少年时代怎么那么笨。前面说过,爸爸的思想跟爷爷比起来,几乎是针尖对麦芒,在我们家门来说真是史无前例。

매사가 매양 엇먹고(말과 행동이 엇나가며 비꼬다) 섞갈리는 상태였다. 외출하는 길이라도 들에 두레가 났으면 아버지는 으레껀 찾아가 막걸리 값이라도 보태 주며 탁주 한두 잔쯤 사양하지 않았다.
对待每件事情的言与行,从来没有走到一起去的时候,总是充满对立和纠葛。外出的路上,看见路边有农乐活动,爸爸总会凑过去添一份米酒钱,而且也不拒绝敬来的一两杯浑酒。

새참 먹다가 부르는 농군이 있으면 아무리 바쁜 걸음이었대도 잠깐일망정 한자리에 어울려서 열무 김치 맛이라도 봐 주고 오는 성미였었다.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치가(治家)하는 데 있어 일치된 점이 있었다면, 기제(忌祭)와 다례(茶禮, 차례)를 성의로 모셔야 한다는 것, 그리고 어느 권속이건 예배당과 절간 왕래를 엄금 시킨 일이며, 농가로서 그리고 왕년에 출어(出漁) 시킬 때의 경험을 가진 선주 시절의 습관에 의해, 매년 맞는 상달 무수 말날에 무우 시루떡을 쪄 놓고 고사 지내는 것을 행사로 아는, 정말 그 정도 외에는 신·구세대다운 현격한 대조를 이루고 있었던 것이다.
依他的性格,遇到在农活儿间隙吃间食的农民叫他,再有急事也会暂时停下脚步,凑在一块儿尝一尝小萝卜泡菜再走。爷爷和爸爸在治家的方法上也有共同的地方,就是诚心诚意地遵守忌祭、茶道。还有,绝对不许去教堂和寺庙。爸爸虽然身为农民,却还有过出港打鱼的经验。根据船主的习俗,在每年十月的最后一天,蒸好萝卜蒸糕举行祭礼(祈求丰年)的事,也被当成一种想当然的惯例。

물론 그외에도 자질구레한 일들에 뜻을 같이한 적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던 것도 사실이다. 사랑엔 아녀자의 출입을 못 하게 했던 일, 사랑 식구와 안식구가 변소를 엄격히 구분해 쓰게 한 일, 남자라면 머슴을 제외하고는 절대 부엌 근처에도 얼씬 못 하게 했으며, 아무리 무더위가 맹습하는 복중에도 손자들마저 소매 없는 옷을 입으면 안방은 물론 대청 마루에도 못 올라서게 통제하며 내외(內外)를 하고, 동네 우물가에도 못 가게 하던 일 등등…….
除此之外,新旧两代人的对照实在太鲜明了。事实上,除此以外在一些琐碎的家事中,也有过不只一两回想法一致的时候。比如不让女人进出厢房;让厢房的人和内宅的女人严格分开用厕所;男人除了佣人以外绝对禁止出入厨房;再怎样酷热的三伏天,即使孙子们穿了没有袖子的衣服,不要说里屋连大厅地板都不让上去;严格遵守男女有别之道,连村里的井口都不让出去等等……

아버지는 어떤 면에서 보면 할아버지보다도 더 완고한 구석이 없지 않았던가 싶다. 곁들여, 할아버지에게는 부족했던 도량과 포용력을 넉넉하게 갖춘 사람이었다. 그것은 지하 조직을 전문으로 했던 당시로서는 매우 적합한 처신책이며 처세술이었을 것이다.
爸爸在某些方面似乎比爷爷更顽固,却拥有爷爷缺少的度量和包容力。当时他整天搞地下组织活动,那是一种非常合适的立身处世之道。

그러나 자식들에 대한 훈육만은 서슬이 퍼렇게 냉엄했다.
唯有对孩子们的教育冷酷无情。

뿐만 아니라 세고을〔보령·서천·청양군(保寧·舒川·靑陽郡)〕의 지하당을 창설하고 이끌었던 책임자로서 하루도 편할 날이 없었음에도, 매사에 지극히 의연하고 여유 있고 묵중한 자세로 일관하고 있었다.
不仅如此,创立了领导三个村子(保宁、舒川、青阳郡)的地下党的负责人,他一天也没轻松过。然而他对待每件事情的姿态却一贯稳重和从容。

 词 汇 学 习

대범하다:大方。大度。豁达。宽宏。

풍채가 준수하고, 행동거지가 대범하다.
仪容俊秀,举止大方。

点击查看更多此系列文章>> 

本翻译为沪江韩语原创,禁止转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