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学,就是用语言塑造形象反映社会生活,又用极强烈的感染力影响社会生活。我们为具备一定阅读基础的童鞋准备的韩国文学名作大餐,希望大家提高阅读的同时,感受这些文学作品中的优美文字感情和艺术表现手法。

일락서산23 — 이문구
日落西山23 — 李文求

이윽고 해야 할 일은 놋요강과 놋타구(가래침을 뱉은 그릇)를 가시는 일이었다. 내가 그것을 시작하고부터 옹점이는 내게 더욱 친절히 굴었고 어려워했는데, 그것은 그녀가 가장 귀찮아 하고 꺼리던 일에 내가 대신 들어섰기 까닭이었다.
之后要干的事,是涮尿缸和痰盂。我开始做这些事以后,瓮点对我格外亲切和客气起来。因为我替她做了她最厌烦的活儿。

요강을 부시는 일은 그리 어려울 것이 없었다. 그러나 가래가 가득 담겨져 있는 타구를 쏟고 수세미질하여 닦는 일은, 조금만 비위가 약했더라도 해내지 못했으리만큼 여간 고역이 아니었다.
涮尿缸并不是什么难事,但是倾倒盛满痰的痰盂并且刷干净的活儿,实在是稍微挑剔一点儿的人就干不下去的苦役。

사랑방을 말끔히 걸레질하고 나면 먼동이 갠다. 이젠 해가 솟아오를 때까지, 무릎을 꿇고 앉아 전날 배운 것을 외워 내야 했다. 그 시간은 사랑 아래윗방에서 묵은 손님이 몇이었든 나는 그네들 좌중 한가운데에 꿇어 앉아 막히지 않게 외워 내지 않으면 안 되었다.
等我把厢房的地板也干净利索地擦上一遍时,天刚要蒙蒙亮了。这时就得跪着背前一天学过的东西,一直到太阳升起来。这个时间里,不管厢房的上房和下房住了多少借宿客,我也得跪在他们中间流畅地背出来才行。

좌중숨소리뿐이었고 나는 흉을 잡히지 않도록 기껏 조심하고 또한 곧잘 치러 내곤 하였다.
炕席上一片呼吸声,我为了不出丑,必须非常小心翼翼。不过我做得非常好。

“어떤가?” 할아버지는 일쑤 손님들한테 물어 손님들의 “싹이 있네유.” 하는 칭찬을 기다렸다.
“怎么样啊?”爷爷经常问客人,期待他们称赞“前途无量啊”。

이제 생각해봐도 우스운 일은 음식에 대하는 자세를 훈계받고 실행했던 일이다. 그것은 천자를 배울 때부터 이미 실천했던 일이기도 했다.
现在想起来真可笑,我当时还受爷爷对待饮食态度的影响,并付诸实践了。这种实践在我学千字文的时候已经开始了。

할아버지는 채중개강(菜重芥薑)을 설명하면서, “흔히들 소채 반찬일수록 생각 웂이 만들고 맛 모른 채 먹느니라. 그러허나 긤생려수〔금생여수(金生麗水)〕허고 옥출곤강(玉出곤강)인 법, 이전버텀 군자는 푸성귀일수록이 가려 먹으랬어. 부디 채즁개강이란 말을 닞지 말 것이니, 푸성귀 속에 게자(겨자)와 새양(생강)이 안 들어가면 상것들 음석으루 예겨라.”
爷爷跟我解释“菜重芥姜”:“越是蔬菜佐菜,越是不用心做,也不懂味道就瞎吃。但是,有金生丽水、玉出昆岗之理啊,自古以来君子吃青菜的时候也要会挑着吃,所以不要忘了菜重芥姜的话。你只要明白在青菜中,没放芥末和生姜的是下人吃的东西就可以了。”

“예.” 나는 덮어 놓고 대답부터 하도록 배웠으매 저절로 나온 응답이었다.
“是。”我已经习惯无条件回答“是”了,而且常常脱口而出。

“이후 워디를 가 혹 음석을 먹는 일이 있더래두 게자 새양이 안 든 음석일랑은 절대 입에 대지두 말으야 쓰느니라.”
“以后不管你到哪儿,要吃什么东西的话,只要是没放芥末和生姜的话,你绝对连沾都不要沾一下。”

그로부터 나는 사오 년 동안이나 남의 집 김치며 나물 따위를 먹지 않으려고 무척이나 애썼던 것이다. 요즘도 이따금 채중개강이 문득문득 생각킬 정도로 애써 실행했던 것이다.
从那以后四五年之久,我尽量不吃别人家的泡菜或青菜之类。当时努力实践了,以至于最近还时不时想起“菜重芥姜”的话。

음식에 대한 할아버지의 자세는 그만큼 철저한 것이었다. 그 무렵만 해도 관촌 부락에서는 대사가 자주 있었다. 어느 해 늦가을엔 처녀 총각 해서 무려 다섯이나 혼인한 적도 있었다.
爷爷对待饮食的态度是那么彻底。那时候冠村部落里经常办大事。有一年晚秋,姑娘小伙儿加起来有五个人结婚了。

잔칫집에서는 으레 큰상을 차려 오게 마련이었다. 마을의 어른에 대한 인사치레로서 그네들 스스로가 그렇게 해야 되는 것으로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 음식상은 물론 맨 먼저 사랑 마루에 놓여졌다.
办喜事的人家理所当然要送一大桌酒席过来,作为呈给村里德高望重的老人的礼节,他们自已认为这是理所应当的事。这类酒菜当然首先放在厢房的大厅上。

“뉘 집서 가져 온 게라느냐?” 할아버지는 우선 상을 들고 온 사람더러 그렇게 물었는데, 대답은 언제나 그 곁에 서서 군침을 삼키고 있던 옹점이의 일이었다.
“是谁家送来的呀?”爷爷首先问送酒桌来的人。但是回答的却总是在一旁直咽口水的瓮点。

“저 근너 짐 약국 망내딸이 시집 간대유.”
“对面药房家的小女儿今天出嫁呀。”

“이렇게 갖춰 보내느라고 애썼다 이르거라.”
“你回去说一声,弄了这样的酒席,辛苦他们了。”

“예.” 하고 대답하며 물러가던 것은 상을 들고 온 사람이었다. 옹점이가 상보를 걷으면 할아버지는 무엇무엇이 올랐는가를 옹점이한테 물었고, 옹점이는 “두텁떡, 수정과, 송화 다식…….” 하며 남김없이 주워섬겼다.
“是。”送酒桌来的人一边回答一边退走。瓮点掀开酒桌上的盖布,爷爷就问瓮点那上面都摆了什么酒菜,瓮点一一回答说:“蛤蟆糕、山峰饼、水正果、松花点心……”

“오죽허겠느냐…….” 그러면서 할아버지는 대개 수정과나 식혜 그릇을 들어 한 모금 입가심해 보았고, 언제나 예외 없이, “페에엥- 이것도 음석이라 가져왔다더냐. 네나 먹고 그릇 내어 주거라.” 하며 매번 외면하기를 주저 않는 거였다.
“不尝也能知道……”爷爷说着话,象征性地端起水正果或甜酒碗尝了尝,每次都毫无例外地说:“呸咿――,这也算是吃的吗?你吃完了把碗拿给他们吧。”每次都这样毫不留情地转过脸去。

언제나 입이 함지박만해지던 것은 옹점이와 우리들이었다. 할아버지는 본래부터 일가 집에서 온 음식이 아니면 일체 맛보기조차 꺼려했던 것이다.
每次都乐得嘴巴咧到腮帮子的人,当然是瓮点和我们几个。如果不是亲戚家送来的东西,爷爷连尝都不肯尝一下。

 词 汇 学 习

푸성귀:青菜。

야산 어디에서도 먹을 만한 푸성귀를 찾을 수 없었다.
这座小山坡上找不到可以吃的野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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